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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1-2

엘리스1 2022. 1. 3.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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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발전단계

지구에 대하여 ‘무엇을’(what), ‘언제’(when), ‘어디에’(where), ‘어떻게’(how), ‘왜’(why)라는 문제의 실마리를 풀기위해서 지질학자들은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를테면 하나의 활화산이 숨기고 있는 문제의 해결을 얻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게 될 것입니다.

도대체 용암은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
화산의 활동은 어떠하고, 그의 열(熱)은 무슨 이유로 발생하는가?
용암과 화산가스는 어디에서 솟아 나오는가?
그 화산은 처음의 분화는 언제였고, 언제 또 다시 분화가 일어나겠는가?
그리고 화산은 왜 특정 지역에 줄지어 있는가?


위의 ‘무엇’은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Empedokles, BC 490~BC 430)가 이르기를 물질의 근본성분은 불, 물, 흙, 공기의 4원소로 되어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같은 생각은 지각을 구성하는 물질에 관한 문제가 고대 그리스 시대에 이미 논의되었음을 뜻합니다.
오늘날 지각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의 대표적 성분은 O, Si, Fe, Al 등의 원소이다. 물질의 세계는 보다 작은 단위로서 원자를 만들고 있는 소립자에서부터 큰 것으로는 우주를 구성하는 행성에 이릅니다.
지질학에서는 이들 양극단 사이의 크기인 광물과 암석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는 문제는 사물에 대한 시간의 개념으로서, 지질학에서는 하나의 사물이 지닌 아주 짧은 역사에서부터 45억 년이라고 하는,
좀 상상하기 어려운 지구의 역사까지 밝히게 됩니다.
그리스의 사학자 헤로도투스(Herodotus, BC 484~BC 425)는 나일강의 범람으로 퇴적물이 쌓이는 과정을 관찰하고, 나일강의 삼각주가 형성되는 데는 수천 년이 걸렸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과거의 어떤 지질 시대에 지구상에 살고 있었던 고생물의 역사를 밝힌다는 것은 지질학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20세기에 와서 개발된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암석과 광물에 대한 연령 측정은 지질학에서 ‘언제’라고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일대 변혁을 초래하였습니다.

특히 달에서 채취한 월석의 방사성동위원소에 의한 연대 측정의 결과는 지구의 성인을 밝히는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지질학이 우주과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어디’라는 문제는 공간, 특히 사물의 상대적 위치와 그 분포에 관련된 일로서, 지질학이 지구과학(地球科學, earth science)의 성격을 띠게 되는 불가피한 요소입니다.

이를테면 지진과 화산활동이 두 지반이 접하는 곳에서 일어난다는 것도 공간문제의 좋은 예입니다.
지질학의 내용 중에서 분포와 위치에 관한 개념이 가장 오래 전부터, 그리고 가장 광범위하게 다뤄져왔습니다.
그러나 어떤 지질 현상이 왜 특정한 곳에서 일어나느냐는 문제의 해결은 좀 더 고차의 연구를 필요로 합니다.


대서양 한가운데에는 대양저산맥이 길게 분포한다는 것은 19세기 말 영국의 해양 탐사선 챌린저(Challenger)호에 의해서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대양저산맥이 오대양에 줄지어 분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960년대의 일인데, 이 발견은 2차 대전의 전승국 지구과학자들이 1950년대를 지구관측 연대로 설정하고, 이 관측을 위해 지구에 관한 수많은 자료들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거둔 결실입니다.

‘언제’, ‘어디’라고 하는 문제는 지질학에서 시간과 공간의 지질 현상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의 하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어떻게’라는 의미의 요강은 대자연에서의 사물의 발생과 변화의 과정을 뜻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근원적 해답은 지질학에서 흥미롭기도 하지만, 매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크레이토스(Herakleitos, BC 약 500)는 “만물은 유전한다”고 하였고, 헤로도투스는 나일강 유역의 구릉지에서 패류 화석을 보고, 그 곳은 한 때 바다였다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해면운동 또는 지각변동의 개념을 막연하게나마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스트라보(Strabo, BC 64~AD 23)는 소아시아에서 지중해연안을 여행하면서 각종 사물을 주의 깊게 관찰한 끝에 Geographia라는 저서에서 육지가 국지적으로 융기하거나 침강한 사실을 예증하였고, 당시 휴식상태에 있던 베수비오산(Vesuvio Mt.) 산체를 관찰하고, 그것이 화산임을 추리하였습니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중세 때에 기독교의 그늘에 가린 과학자들은 자연의 원리를 연구하려고 하는 기백을 잃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성서를 믿는 나머지 사물은 ‘왜’ 생겼으며, ‘어떻게’ 진화하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흥미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대지가 불과 수천 년 전에 갑자기 현재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고, 얼마 후에는 종말이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 후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문예부흥운동과 더불어 과학 분야에 새바람이 일게 되었습니다.
여러 면에서 탁월한 재능이 있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는 지형이 침식작용으로 인하여 깎여, 결국 평탄해진다는 사실과 아페닌(Appenine)산맥의 석회암 중에서 나온 패류화석을 보고, 그것은 이탈리아가 해저에 있었을 때의 해저생물의 유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지질학이 현대과학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에 걸쳐서 여러 탐구자들의 노력의 결과로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덴마크의 니콜라우스 스테노(Nicolaus Steno, 1638~1687)는 “지층누중의 원리”를 제창함으로써 지층 속에 보존된 지구역사의 기록을 시대 순으로 배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케 하였습니다.
그는 이 원리뿐 아니라 “본래 수평면의 원리”와 “면각 일정의 법칙”을 발견하였는데, 전자는 지층의 퇴적양상과 퇴적 후 지각변동에 의한 변형의 양상을 구별해주는 중요한 원리이며, 후자는 광물의 결정면 사이의 성질을 밝혀주는, 광물학의 기초를 다지는 중요한 법칙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당시까지의 지구에 관한 단편적인 지식들이 원리의 틀 속에 체계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에라그무스 바르토린누스(Eragmus Bartolinus, 1625~1698)는 방해석에서 복굴절 현상을 발견하여 결정광학(結晶光學)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무엇보다 영국의 제임스 허턴(James Hutton, 1726~1797)에 의한 “동일과정설”의 제창은 지질학을 자연과학(自然科學, natural science)으로 확립시키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지질학뿐 아니라, 화학(化學, chemistry)과 의학(醫學, medicine)에도 깊은 조예가 있는 학자로서, 그의 해박한 지식과 면밀하고 광범위한 지역의 야외 조사를 통해서, 지구의 변화는 결코 일시적으로 급격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오늘날 자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상적인 변화가

오랫동안 거듭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어, 당시까지 유럽을 지배하던 격변설(천변지이설)에 반기를 들어, 동일과정설을 주장하게 되었다. 이 이론의 등장으로 격변설은 빛을 잃게 되었습니다.

제임스 허턴은 또 화성론(火成論, plutonism)을 제창함으로써 암석의 성인에 대한 바른 이론을 정립시켰습니다.
그 당시 유럽에서는 격변설과 더불어 수성론(水成論, neptunism)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이는 독일의 아브라함 고틀로브 베르너(Abraham Gottlob Werner, 1750~1817)에 의해 주도된 이론으로서, 그는 모든 암석은 지구를 덮고 있었던 원시적인 바다 속의 물질이 침전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으며, 화산에서 분출하는 용암까지도 지층 안에 묻힌 석탄의 발화 때문인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임스 허턴의 정확한 야외관찰에 의해서 지각 내부의 뜨거운 용융체(마그마)가 지각의 내부 또는 지표로 상승하여 굳어져서 화성암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따라서 암석은 지표의 물에서 침전되어 형성되는 수성암 외에 지각 내부의 뜨거운 마그마의 고결작용으로 만들어지는 화성암의 존재를 확인하게 하였습니다.

한편 영국의 윌리엄 스미스(William Smith, 1769~1839)는 “동물군 천이(遷移)의 원리”를 확립하여 층서학(層序學, stratigraphy)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그는 본래 토목기사로서, 지질학에는 문외한이었으나 많은 토목공사를 하는 중에 지층 속에 있는 화석에 대해 흥미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화석을 깊이 연구하게 되었고, 마침내 각 지층마다 고유한 화석군을 함유하고 있다는 원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원리를 통해 지층을 구분하고, 또 멀리 떨어져있는 지층의 대비를 가능케 하는 지질학의 기본 원리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질학을 확립시키는데 있어서 영국의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의 괄목할 만한 공헌을 뺄 수 없습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로서, 영국뿐 아니라 유럽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자연의 변화와 지질 현상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지질 현상에 대한 실증적 자료들을 많이 제시하였으며, 이에 근거하여 불굴의 명저 『지질학의 원리』(principles of geology: 1830년, 1832년 및 1833년에 제1권, 제2권, 제3권)를 발간하여 제임스 허턴의 동일과정설을 확립시키는 한편 지질학의 체계화에 공헌하였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척추동물학자 장 레오폴드 니콜라 프레데리크 퀴비에(Jean Léopold Nicolas Frédéric Cuvier, 1769~1832)는 그가 격변설을 열렬히 지지한 점에서는 지질학의 발전을 저해하기도 하였으나, 매머드(mammoth)의 화석연구를 통해 이들 매머드가 현재 생존하고 있는 코끼리 류와 같은 속(屬)에 속하는 절멸종이라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그 때까지 굳게 믿고 있었던 종(種)의 불멸을 부인하고, 절멸종의 존재를 최초로 확인케 했으며, 이와 같은 절멸종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분야를 고생물학이라 하여, 이 학문의 창시자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또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Jean Baptiste Lamarck, 1744~1829)는 파리 부근의 발달된 신생대층에서 산출된 연체동물 화석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로 무척추고동물학의 기초를 이룩하는데 기여하였고, 이러한 그의 연구는 유명한 용불용설의 밑받침이 되었습니다.
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윌리엄 울러스턴(William Wollaston, 1766~1828)의 반사측각기의 발명, 크리스티안 자무엘 바이스(Christian Samuel Weiss, 1780~1856)에 의한 유리지수 법칙의 발견, 요한 프리드리히 크리스티안 헤셀(Johann Friedrich Christian Hessel)에 의한 32정족의 확립 등은 광물학뿐 아니라 암석학 분야에서도 획기적인 진전을 보게 하였습니다.

지질학에서의 발전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1896년 프랑스의 베크렐(H. Becquerel, 1852~1908)의 방사선 발견은 곧 이어서 방사성동위원소에 의한 암석의 절대 연령 측정을 가능케 함으로써 인류의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지구의 절대 연령을 측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1950년대 이후에 X선 회절법을 이용한 광물 결정구조의 해명, 전자현미경의 개발, 전자회절 장치, 전자현미경분석기, 전자주사현미경의 개발은 광물의 미량분석, 희유원소의 분석, 미고생물의 연구 등 다방면에서 놀라운 연구성과를 이룩하게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2차 대전 후, 그동안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던 해양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해저지질에 대한 새로운 지식이 급격히 축적되었고, 고지자기학(古地磁氣學, paleomagnetism)의 발전은 1930년대에 빛을 잃었던 대륙이동설을 알프레도 로타어 베게너(Alfred Lothar Wegener)에 의해 부활케 하였으며, 지구과학의 일대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판구조론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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